저널리즘 게임, 그리고 2024년 12월의 한국

2000년대는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세가가 치열한 콘솔 경쟁을 펼치고 있었던 시기로, Grand Theft Auto 3, The Sims, World of warcraft, Call of duty 시리즈 같은 메가 히트작이 출시된 시기기도 했다. 또한 3D 그래픽 발전, 인터넷 보급, 모션 컨트롤 기기의 등장으로 게임 산업은 빠르게 변화했고, 콘솔, PC, 모바일 플랫폼에서 다양한 형태의 게임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이와 같은 변화에 힘입어 다양한 게임 담론을 위한 가능성 또한 확장되었다. 


이 시기는 ‘게임이 오락을 넘어서 예술이 될 수 있는가’가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담론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시리어스 게임(Serious game)이라는 장르이다. 시리어스 게임은 단순한 오락적인 측면을 넘어서 정치, 건강, 교육, 과학이나 예술의 탐구와 같은 목적을 위해 설계된 게임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뉴스게임(Newsgame)은 시리어스 게임에서 파생된 하위 장르로, 게임과 저널리즘을 결합하여, 본질적으로 어떠한 정보를 알리고, 그것을 이용한 담론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September 12th : A toy world 의 게임 초반 소개 화면


2003년 Gonzalo Frasca가 개발한 September 12th: A Toy World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게임 플레이에 적용하는 ‘뉴스게임’ 장르의 첫 번째 시도로 평가받는다. 이 게임은 마우스를 클릭해 마을에 미사일을 떨어뜨리는 간단한 메커니즘을 통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테러리즘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잠식하고, 또 다른 테러리즘을 촉발하는지를 체험적으로 탐구하게 한다. 


게임의 플레이 방식은 단순하다. 플레이어는 민간인과 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이 뒤섞여 있는 마을에서 한 지점을 선택해 미사일을 발사한다. 그러나 곧 플레이어는 테러리스트를 목표로 미사일을 쏘더라도, 그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민간인이 죽은 자리에는 슬퍼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 중 일부는 결국 또 다른 테러리스트로 변하게 된다. 게임의 초반 설명에서 제작자는 ‘이 게임의 규칙은 엄청나게 간단하다. 당신은 미사일을 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라고 설명한다. 미사일을 쏘면 쏠 수록 테러리스트들로 가득 차게 되는 마을을 보며, 플레이어는 또 다른 테러리스트를 만들지 않는 방법은 미사일을 쏘지 않는 것, 즉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기로 결심함으로서 게임이 조명하고자 하는 의미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September 12th를 시작으로 Darfur is dying부터 Budget hero, 그리고 Papers, please, 다시 좀 더 풍자적인 성격이 강한 Molleindustria의 Mcdonald's video Game까지 게임 속의 저널리즘은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 속에서 우리는 테러리즘에 맞서 싸우는 군인이 되어 전쟁의 악순환을 목격하고, 난민 캠프에 사는 주민이 되어 위험을 뚫고 물을 찾기 위해 군용 차량이 다니는 길을 뛰어다니며 위험을 감수했다. 국가의 재정을 책임지는 정책 입안자가 되어 예산의 한계를 마주하고, 국경 검문관이 되어 인간의 개인적인 딜레마와 국가의 규정 사이에서 갈등했다. 또한 패스트푸드 회사의 CEO가 되어 윤리와 이윤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확인했고, 선택의 결과가 플레이어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 문제를 초래하는 것을 경험했다. 이 게임들은 단순히 우리를 딜레마 속에 던져 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구조적 문제를 체험적으로 인지하도록 돕는다. 


많은 게임 서적들은 플레이어의 일상에서 익숙한 사회적, 문화적 요소를 활용해 게임의 규칙이나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이 효과적인 게임 디자인 원칙이라고 설명한다. 뉴스게임도 이러한 원칙을 따르지만, 일반적인 게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대부분의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익숙한 규칙이나 시스템을 변형해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재미를 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반면, 뉴스게임은 사회 문제를 배경으로, 낯섦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경계를 설정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특정 현상을 사회적 담론으로 익숙하게 받아들이지만, 그 뒤에서 실제로 어떤 절차가 진행되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 속의 개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이끄는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뉴스게임은 이러한 낯섦과 익숙함의 경계를 게임의 설정으로 삼아, 플레이어가 그 안의 절차와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문제의 일부로서 사건의 복잡성과 맥락을 이해할 기회를 얻는다.


이안 보고스트는 절차적 수사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게임이 가진 독특한 설득력을 강조한다. 그는 게임이 단순히 글이나 시각적 요소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플레이어가 ‘현상에 따르는 과정’과 ‘결과에 이르는 절차’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모델을 설계함으로서 세상을 이해하는데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뉴스게임은 바로 이러한 ‘절차적 수사학’을 중요한 원리로 삼는다. 뉴스게임은 이안 보고스트가 주장한 대로, 텍스트나 시각적 요소가 제공할 수 없는 절차적 플레이의 방식으로 플레이어가 사회 현상의 딜레마 및 구조적 문제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September 12th: A Toy World는 플레이어에게 먼저 미사일 발사를 선택할 자유를 준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러나 미사일을 발사하고 마주하는 게임 속 피드백을 통해 플레이어는 선택의 결과, 즉 현상에 따르는 과정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체험의 결과는 다시 미사일을 쏘는 행위의 딜레마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이후 플레이어가 다시 내리게 되는 선택은 그 깨달음의 위에서 내리는 선택인 것이다.


또 다른 예로, Paper, Please는 플레이어에게 이민자의 입국 여부를 결정하는 국경 관리관의 역할을 맡긴다. 처음에는 단순히 서류를 확인하고 규정을 준수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점차 생존이나 가족과의 상봉과 같은 개인의 사연이 등장하며 게임은 윤리적 딜레마의 문제로 확장된다. 플레이어는 규정을 어기고 이민자를 입국시킬지, 아니면 규정을 준수하며 이들의 입국을 거부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는 월급 삭감이나 가족의 생존 위협과 같은 게임 속 피드백으로 이어진다.


비록 2000년대 중반 AAA 게임의 부흥으로 인해 시리어스 게임에 대한 담론은 대중적으로 크게 확장되지 못했지만, 시리어스 게임은 여전히 인디 게임 장르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Unreal, Unity, Godot, GameMaker와 같은 접근성이 높은 게임 엔진의 보급은 1인 개발자나 작은 규모의 개발자 팀에게 강력한 창작의 도구가 되었고, 인디 게임이 AAA 게임 못지않은 퀄리티와 게임성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진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게임의 수 또한 많아졌음을 시사한다. This war of mine, beholder, Frostpunk, Detention 같은 게임들은 상업적으로 성공하면서도 사회적 메시지와 구조적 문제를 조명함으로써 비평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시리어스 게임, 게임 속 저널리즘은 현재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게임 산업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차적으로 확립해 나갈 것이다.




2024년 12월의 한국



그렇다면 2024년 12월. 대통령의 위헌적인 계엄령 선포와 여당의 탄핵 소추 표결을 위한 본회의 보이콧이라는 유례없는 정치적 혼란을 겪은 한국에서, 게임을 통한 저널리즘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1치킨 알만툴 게임잼의 주최자인 개발자 Chalkseagull은 12월 3일 그날을 기억하기 위한 게임 잼을 주최했다. 해당 게임 잼에는 12개의 작품이 제출됐고, 온라인 서브미션 뿐만 아니라 탄핵 소추 표결을 했던 14일 당일 여의도 공원에 모여 같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개발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나 또한 소소하게 게임을 개발해 게임 잼에 참여 했고, 시위에 나가며 오프라인 모임에도 잠시 참여했다.  




그 밖에도 다양한 개발자들이 계엄령 및 12월 7일에 관한 게임을 만들었다. firstseethesun은 서울의 밤이라는 로그라이크 게임을 개발했고, MILKY는 본회의장을 떠난 105인을 기억하기 위한 평범한 게임이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방식으로 혼란스러운 2024년 12월의 한국을 조명해냈고 또 기록해냈다.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인 노트북을 들고 여의도로 나와 차가운 바닥에 앉아 탄핵을 외치는 사람들 속에서 게임을 개발했다.


게임을 개발하고 플레이하며 가장 자주 드는 생각은, 그 안에서 ‘행위자로서의 나’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를 소비하거나 주어진 규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선택과 행동이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줄 수 있다는 실질적인 체감에서 비롯된다. 그런 점에서 게임은 마치 우리가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실질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그곳에 나섰다는 것. 나의 몸짓과 외침이 행동으로 나타났고, 그 행동이 변화를 이끌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는 점에서 게임과 현실은 연결된다. 게임 속에서 행동하는 ‘나’를 인식하게 되는 순간은, 단순히 조작을 넘어 의미 있는 행위로서의 행동을 체감하게 한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게임 세계를 설계하고, 플레이어가 행동하는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한 개발자들에게 그리고 플레이어에게 감사하게 된다.




참고 자료 : 

* Bogost, Ian.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eogames. Cambridge, MA: MIT Press, 2007.

* Foxman, Maxwell. Play the News: Fun and Games in Digital Journalism. 2015. https://doi.org/10.7916/D8J67V59.